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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ing culture

조용한 희망(Maid), 요란스러운 찬사

by life is goguma 2023.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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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선가 봤는데 배우 공유가 넥플릭스의 <조용한 희망>이라는 시리즈를 추천했다고 해서 얼마 전부터 찾아보려 했었다. 처음에는 영화라고 생각해서 많아야 2시간 투자하면 되겠지 싶었는데 이런 10화까지 있는 시리즈였다. 첫 화를 막 돌리다가 한 번 시작하면 왠지 10화까지 쭉 좀비가 되어서 볼 거 같아서 잠시 접어두었다.

그러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반납함에 있는 분홍색 표지에 가독성이 좋은 파란 폰트의 <조용한 행복>이라는 책을 발견한 것이다. 영상화된 시리즈를 보기 전에 책을 먼저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야지만 활자 이면을 맘껏 상상할 수 있을 거 같았고, 왠지 시리즈를 보고 난 후 책을 읽으면 감동이 반감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이 생각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감사하게도 <조용한 희망>은 나에게 가장 적절한 시간에 찾아왔다. 정말 운명처럼 말이다. 만약 이책을 맞벌이를 하면서 정신없을 때 읽었다면 몇 페이지 넘기지 않고 읽기를 포기했을 것이다. 맞벌이 때는 어떤 것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사치이기도 하거니와 그때는 뭔가 짠한 이야기를 듣고 있을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이미 그 짠한 이야기 속 정신없이 살아가는 주인공이 나였으니까. 
그때는 내 일상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했다. 왠지 그래야 그 삶을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작은 것에도 쉽게 무너질 것만 같았다. 눈코 뜰 새 없이 집안일과 회사일을 오가면서 남편의 불만, 아이들의 불평을 들어주고 해결하다 보면 나라는 사람은 없었고 그 와중에 나와 유사한 처지의 친구의 얘기를 듣거나 읽는다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어찌 되었든 회사일에 할애했던 물리적 시간, 8시간은 계속 진행 중인 가족들의 다사다난한 일들에 조금 더 정신을 쏟기에 충분했고 그 시간의 반은 나의 미래를 위해 할애할 수도 있었다. 그 와중에 이 <조용한 희망>이 자연스레 들어온 것이다. 

어떤 엄마가 좋은 엄마인가?


<조용한 희망>은 엄마 입장에서 어떤 엄마가 좋은 엄마인가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답변을 줄 수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 속 주인공 스테퍼니는 미아라는 딸의 싱글맘으로써 죽을힘을 다해 살지만 항상 본인이 딸에게 좋은 엄마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스테퍼니는 진심으로 좋은 엄마였다는 걸 알 수 있다. 
미아의 아빠이자 주인공 스테파니의 남자친구, 제이미는 알콜 중독자이다. 알코올 중독자의 특징은 본인의 인생뿐만 아니라 온 가족의 인생을 불안 속에 집어넣는다는 것이다. 마치 잘 작동하지 않은 믹서기에서 자기가 갈리고 있고 그 위에 가족들이 있는데 시간이 지나 자연스레 그 믹서기에 갈리는 것은 가족의 인생이 된다는 것이다. 다행히 주인공 스테파니는 그 이치를 현명하게 깨달았다. 그래서 그녀는 제이미가 술을 먹고 막 가족들을 그 믹서기 칼날로 끌어들이려 할 때 그녀의 딸 미아를 데리고 그 믹서기에서 벗어났다. 첫째로 스테퍼니가 좋은 엄마라는 사실이 입증되는 순간이다.
두 번째는 미아와 살고 있는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서 계속 미아가 병을 앓게 되자 아이를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하고 결국 아이를 위한 환경을 찾아간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그녀는 그녀의 딸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가족들이 던진 말들에 나는 좋은 엄마인가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
어느날 중학생인 큰 딸이 뭐 때문인지 기억이 희미하지만 발끈하던 나를 보고 툭 던졌다.
"엄마를 닮을까 봐 걱정이야. 분명 나도 분노조절장애가 될 거야."
또 어느날인가 딸아이랑 심하게 다투는 나를 보고 남편이 그랬다.
"딸한테 꼭 이겨야 속이 시원하겠어?"
쉽게 쉽게 잊어버리는 내가 지금도 이 말들을 기억하는 것을 보면 여전히 반성 중인 모양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알게 된다. 과연 나는 좋은 엄마인가 항상 자문하는 그 자체가 좋은 엄마의 증거라는 걸.
반성하면서 나쁜 모습을 개선하고 좋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조용한 희망>은 정부지원금에 많이 의존하는 싱글맘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세금도둑으로 쉽게 치부했던 사회 약자들이 그 이면에서 얼마나 많은 고통 속에 살아가는지 알 수 있다. 어찌 보면 인생의 한 사건, 예를 들면 이혼, 부모님의 사망, 실직, 사업실패 등으로 평범한 사람조차 순식간에 인생의 밑바닥으로 추락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랬을 때 이 책의 주인공처럼 희망을 놓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스테퍼니는 가난 속에서도 미래를 계속 생각한다. 고된 삶에서도 학위를 받기 위해 노력한다. 그 학위가 미래를 보장하는 안정적 직장을 구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닌 그녀의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한 분야여서 더 울림이 있다.

나는 늘 불안했다. 행복할 때 더 불안했던 거 같다. 오히려 힘든 시기는 이겨내는 것에 집중해서 불안할 틈이 없었다. 자존감이 높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가 흐트려뜨리면 쉽게  온 신경을 내주고 말았다. 나 아니면 그 누구도 내 삶을 맘대로 흔들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지고 싶다.  <조용한 희망>에서 스테퍼니는 그런 사람이였다.

참고로 넥플릭스 시리즈에서는 주인공이 알렉스(원작에서는 스테퍼니)이다.  딸 이름은 매디(원작에서는 미아), 딸의 아빠는 숀(원작에서는 제이미)이다. 극중 알렉스로 나오는 배우 마거릿 퀄리는 앤디 맥도웰(휴 그랜트와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에 출연한 그 배우)의 막내딸이다. 신기하게도 극 중에서도 알렉스의 조현병 걸린 예술가 엄마역을 앤디 맥도웰이 하였다. 굉장한 기괴한 엄마역이지만 아는 배우의 등장만으로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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